생각

미학과 예술

마루7 2009. 3. 5. 10:39
 

미학과 예술


1. 미학의 유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학(美學)’이라는 용어는 일본인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Aesthetica라는 교과를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용어는 처음에는 선미학(善美學), 가취론(佳趣論: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론), 미묘학(微妙學: 섬세하고 묘한 것을 탐구하는 것)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1898년에 이르러 미학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사실 서양에서도 이 용어도 근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용어의 유례가 근대에 기반으로 두고 있다고 해서 미학적 활동이 근대 이후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이미 고대 시대에서부터 미학적 활동은 존재하였다. 다만 미에 대한 탐구가 학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A. G. Baumgarten, 1714-1762)의 저서 『미학』(Aesthetica I, 1750, II, 1758)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그는 이 용어를 사실 감각지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이스테시스(aisēsis)에서 근원을 두고 있다. 그는 인식을 ‘어두운dunkel’ 인식과 ‘명석한klar’ 인식을 구분하고, 그리고 이 후자의 인식을 다시 감성적 인식인 ‘혼란스러운verworren’ 인식과 ‘이성적’ 인식인 판명한(deutlich)으로 구분하였다. 따라서 미학은 전자의 혼란스러운 인식에 속하였다. 미는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에스테티카를 ‘감성적 인식의 학’(scientia cognitions sensitivae)로 정의하였다. 이 이후 서양에서는 미와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미학(aesthetica, Esthétique, Ästhetik)이라고 명명하였다.

나아가 칸트는 바움가르텐에 대한 이런 부분을 더욱 심화시켜 미에 관한 연구를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의 심적 능력을 인식능력, 감정능력, 욕구능력으로 구분하고, 두 번째와 관련하여 예술의 영역을 독자적으로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는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을 통하여 ‘취미(趣味)’1)와 ‘천재’ 개념을 중심으로 미와 예술의 문제를 탐구하였다. 칸트에게 취미는 미를 판정하는 능력으로서, 우리의 주관, 주관에 따른 쾌,불쾌라는 감정에 관계한다. 그에 의하면 취미를 통해 이루어지는 판단, 즉 취미판단은 우리들이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놀이’라는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어 보편타당성을 지닌다. 나아가 칸트는 예술을 천재가 미적 이념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며, 그는 천재의 예술 창조 활동을 반성적 판단력의 주관적 원리에 근거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이런 방식을 통하여 예술은 이론적 인식이나 실천적 행위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의 미적 가치를 갖는다고 봄으로써 예술의 자율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2. 미학의 연구대상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미는 감성적 인식에 관계하면서 동시에 초감성적 인식에 관계한다. 즉 미는 감각기관이 아닌 상상력을 통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미는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자연미는 비인위적인 미로서 풍경미와 같은 것일 수 있지만, 미학적 의미에서의 자연미는 인간,역사,사회를 포함한 현실생활에서 체험되는 미를 총칭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현실의 삶 가운데서 체험되는 미를 의미한다. 반면에 예술미는 인간의 창조 욕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미이다.

따라서 자연미는 자연의 사물에서 주어진 것이라며, 예술미는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이다. 그러므로 자연미는 수용성을 지니고 있다면, 예술미는 생산성을 지니고 있다. 자연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인간의 정신적 창조 활동인 예술로는 이런 미가 담길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에 예술미를 강조하는 사람은 자연에는 추한 것도 많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간의 정신의 탁월성으로 포착하여 창조한 것이 더 높은 차원의 미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신의 창조물인 자연의 위대함을 근거로 자연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인간의 정신적 창조의 위대함을 근거로 예술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인간미에 대해서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내면적 아름다움을 양심이나 도덕에서 찾고 이것을 통해 미를 언급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예술과 도덕은 상호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3. 미의 이론과 실천

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단순히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것과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차이가 있다. 예술활동이 미라는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예술가는 자기 활동의 목표인 미가 무엇인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미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많은 한계를 느끼며, 그래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작가의 실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론가와는 많은 거리감을 느낀다.

사실 미와 예술의 세계에서만큼 이론과 실천의 틈이 큰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둘은 서로 구분이 되지만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사실 미의 향수나 예술의 창작과 같은 체험의 직접성과 미와 예술에 관해 학문적으로 반성하고 고찰하는 간접성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지만, 우리들 정신의 밑바탕에서 양자는 하나가 된다. 사실 우리는 이론적 반성 없이 실천적 작업이 무의미하고, 역으로 실천적 작업 없이 이론적 반성만으로는 현실감이 없다. 마찬가지로 미적 체험을 해보지 않고 미나 예술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반성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며, 역으로 진정한 미와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정으로 반성해보지 않고는 제대로 된 예술적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미의 이론과 실천은 각자 독자적 영역을 형성하지만, 이들 모두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신활동이다.


4. 미학, 예술철학, 예술학

미학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철학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이 존재하며, 이 방법에 따라 예술철학과 예술학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방법은 19세기말까지 행해진 미에 대한 유일한 연구방법이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후자의 방법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전자와 관련해서도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미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룸에 있어서 미의 원리를 밝히고자 하는 ‘미의 철학’과 예술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예술의 철학’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플라톤의 <<심포지엄>>에서 사랑을 미에 대한 추구를, 즉 소크라테스가 미에 관해서 무녀들로부터 들으면서 아름다운 육체→아름다운 인간의 행위→아름다운 학문→미 자체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부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후자는 근대 낭만주의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미학을 하나의 개별과학으로 정립하고자 하였다. 미의 철학이 예술의 철학으로 대치되면서 미학이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칸트까지만 하여도 예술미보다는 자연미를 학문적 대상으로 삼았지만, 19세기 독일미학, 특히 헤겔미학에 이르러서는 예술미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철학이라는 명칭은 자연미보다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창조된 미, 즉 예술미를 중시하는 19세기 독일미학에서 본격화되었다.

다른 한편 자연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인 관점에서 예술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학’(Kunstwissenschaft, Science of Art)이 존재한다. 이것은 피들러(K. Fiedler, 1841-1895)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예술이 곧 미라는 종래의 전제를 버리고, 예술 자체의 본질적 목적의 의의를 주장하고자 한다. 그는 예술적 활동의 본질을 인간 정신이 창조한 것으로 보며, 이 예술은 미와 독립적인 것으로 본다. 이런 경향은 20세기 초 데스와(M. Dessior, 1867-1947)와 우티츠(E. Utiz, 1883-1956)에서 본격화되었으며, 이들에 의해서 넓은 의미의 예술학은 예술의 다양한 장르, 즉 음악, 미술, 문예, 연극, 영화, 무용 등에 담겨 있는 특유한 법칙성을 탐구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반면에 협소한 의미의 예술학은 회화, 조각, 건축 등 조형예술에 관한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를 하는 미술학이나 미술사에 국한되었다.  


5. ‘미’ 개념의 어원과 의미

동양에서 ‘美’라는 문자는 羊과 大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미의식은 포동포동하게 살찌고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양의 자태가 안겨주는 감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말에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고유섭(1904-1944)에 따르면 ‘아름’(‘안다’는 미의 이해작용)와 ‘다움’(격 내지는 가치)가 결합된 것으로, 앎의 가치, 지적 가치를 의미한다. 한편 양주동(1903-1977)에 의하면 ‘아름’은 ‘나’에 해당하며, ‘다움’은 ‘같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은 ‘제 마음에 어울린다’는 뜻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아름다움은 객체와 주체가 일체가 될 때 나타나게 되는 감정을 일컫는 것이다.

한편 서양에서는 ‘미’는 beauty로서 고대 그리스어로는 καλον, 라틴어로는 pulchrumdmfh 지칭된다. 이런 단어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bellum으로 대체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bello, 프랑스에서는 beau, 영어에서는 beautiful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원래 그리스어 칼론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감탄을 유발하며 환기시키는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이 말은 시각, 청각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나 성격 전반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리스인들은 음악에서의 조화(harmonia)나 조각에서의 비례(symmetria)를 미와 관련되어 사용하였지만, 이 역시 나중에는 칼론에 포함되었다. 한 마디로 칼론은 행위, 습관, 제도, 사고 전반에 두루 두루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대 말기에 이르러 이 용어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대상에만 국한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칼론은 아름답다에 사용되는 용어로서 이것은 조화나 비례와 같은 합리적인 성질을 지시하였다. 어떤 사물이 조화롭게 비례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곧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식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도 당연하게 사용되었다.

한편 ‘미적’(aesthetic)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지각하다(αισθητôς, aisthētos)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미학이 연구해야 할 전체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이 ‘미적’(ästhetisch)이라는 것을 ‘개념적 사유의 매개 없이 오직 직관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쾌’라는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용어를 자연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미와 숭고를 포괄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사실 이 용어는 어원적 차원에서 볼 때 직접 경험에 의해서 성립되는 직감적인 가치인 미적 가치를 표시하는 것이다.

버크(E. Burke, 1729-1797)와 칸트로 이어지면서 이 용어는 미적 범주라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으며, 이 미적 범주에는 미와 숭고가 포함된다. 특히 버크는 이 미적 범주와 관련하여 숭고와 미의 문제를 다룬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감정을 자기보존의 감정과 사회성의 감정으로 구분하고, 전자에서는 숭고를 후자에서는 미를 도출하였다. 칸트는 버크의 미적 범주론을 수용하여 미와 숭고를 분석했는데, 특히 그는 숭고를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하였다. 이후 피셔(F. Vischer, 1807-1887)는 이 미적 범주를 미, 숭고, 골계로 삼분화하였으며, 데스와는 미(Schön), 숭고(Erhaben), 우아(Niedlich), 비장(Tragisch), 골계(Komisch), 추(Haßlich)로 6분화하였다. 미와 추가 대립하며, 숭고와 우아가, 비장과 골계가 각기 대립한다.

이들 각각의 특징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첫째로 순수미(das Schöne, the beautiful, beauté)는 파생적 미에 대비되는 본래적인 미를 말한다. 이 순수미는 미의 일반적 특질이 가장 순수하게 구현되는 것으로 추나 숭고와 대립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추는 미의 대립개념으로서 미적 규범에서 벗어나 미적 관조를 방해하는 것, 미에 반하는 것(widerästhetisch)을 의미한다. 추는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주는 경우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추는 보기 흉한 동물이나 시체의 형상과 같이 대상 그 자체는 혐오스러워도, 그것을 훌륭하게 모방한 회화는 우리에게 쾌를 유발할 수 있는 경우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도 그 자체로 보면 나쁜 것이지만, 전체로 보면 조화를 가져다주는 경우를 추라고 보았다. 로젠크란트(K. Rozenkranz, 1805-1879)는 ‘추의 미학’을 역설하였다. 백이 흑이 있음으로 더 돋보이는 백이 되듯이, 추는 미를 더 미답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미와 추는 서로 대립되면서 서로를 살리는 개념이다. 이런 추는 미에 비해 무형식성, 부정확성, 기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불균형, 부조화를 지니고 있다. 이런 추는 미적 인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전체에 생동감을 높여주는 자극제로서의 힘을 갖는다.  

둘째로, 숭고(das Erhabene, the sublime, le sublime)는 롱기누스(Longinus, 213-273)가 <<숭고론>>(peri hyphos)에서 ‘높이’를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한 것으로, 이것은 인간이 현실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초월하여 더 높은 것을 동경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따라서 숭고는 인간을 신과 같은 정신으로 고양시키는 ‘위대한 정신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후 버크는 경험적이고 심리적이며 생리학적인 입장에서 미와 숭고의 기초를 인간의 근본 충동인 자기보존과 사회성으로 규정하였다. 숭고는 자기보존에, 미는 사회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어서 칸트는 버크의 이런 입장을 고민하면서 미와 숭고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에 의하면 미는 한정적 대상의 형식에 관계하지만, 숭고는 한계가 없는 형식에 관계하며, 미는 지성, 숭고는 이성이 각기 표출하는 것에 관계한다. 그리고 미는 질의 표상, 숭고는 양의 표상과 관계한다. 또한 미는 직접적인 생명촉진의 감정이자 긍정적인 것임에 비하여, 숭고는 생명력을 일시적으로 저지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분출된 감동으로 외경과 같은 부정적인 쾌를 포함한다. 칸트는 이 숭고를 수학적 숭고(das mathematische Erhabene)와 역학적 숭고(das dynamisch Erhabene)로 구분하고, 전자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에, 후자를 너무나 막강한 힘에 비유한다. 이러한 숭고는 대상과 관련해서 볼 때 내용의 측면에서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을 압도하는 위대성을 가리키며, 따라서 실제적 지각이나 상징적 파악을 통해서 대상의 질이나 양을 파악하는 한계를 초월할 만큼 위대한 경우로서 몰한계성, 몰형식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둘째로 이 숭고는 주관과 관련해서 볼 때 대상의 무한한 우월성으로 인해 유한적 주관이 압도됨으로써 이 양자가 분열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지니는 가치로 인하여 주관이 내면에 경탄과 외경 및 존경을 갖도록 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숭고의 개념이 현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바로 리오타르(J. F. Lyotard, 1924-)의 “숭고와 아방가르드”에서 이다. 그는 숭고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기쁨과 고통, 즐거움과 두려움, 감정의 강화와 저하가 결합된 이 모순적 감정은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 숭고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 비규정적인 것을 나타내게 함과 동시에 사라지게 하는 이 모순된 감정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말까지의 예술적 반성에서 주요 쟁점이었다. 그리고 숭고는 근대를 특징짓는 예술적인 감성의 양식이다. …숭고의 미학과 더불어 비규정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19세기와 20세기 미학의 과제가 되었다.


리오타르는 칸트의 숭고가 지성의 두 가지 능력, 즉 사유능력과 상상력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본 것에 대해서 버크의 입장을 수용하여 거기에 시간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버크의 숭고 개념이 세잔느의 작품과 현대의 예술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이런 의미에서 현대예술을 아방가르드라고 명명했다.

셋째로, 우아(Anmut, grace, grâce)가 있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숭고와, 다른 한편으로는 추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우아는 순수미에 가까운 개념으로서, 고전적 예술의 미적 특성이며 조형예술에 자주 언급된다. 그런데 쉴러(F. Schiller, 1759-1805)에 이르러 일반미학의 중요 개념으로 설정하고 우아론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아는 초감성적인 인격에 대한 감성적 표현으로서, 이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의거한다. 의식에 의거하는 우아는 허위일 뿐이다. 우아는 아름다운 혼으로부터 표출되는 몸의 놀이로서, 여성적 덕에 관계하는 존엄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성이 감성과 부조화에서 그것을 넘어서 나타나는 차원이기도 하다.

넷째로, 비장(das Tragische, the tragic, le tragische)이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비극미로서 골계와 대립되는 것이다. 이런 비극미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주장되었으며, 인간의 고귀한 행위와 의지로 성립되는 인간의 위대성이 침해되는 비통한 과정이며 결과이다. 즉 비장은 이러한 비통함으로부터 비롯되는 비극적 고뇌가 부정적인 계기에 의해서 감정이 강화되고 고양되는 가운에 성립되는 것이다. 이 비극미를 통해 인간은 대상과 분열 모순되어 있는 상태를 넘어서 나아간다.

다섯째로, 골계(das Komisch, the comic, le comique)가 있는데, 이것은 희극미로서 비장이나 숭고와 대립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골계를 내용으로 하는 희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보통인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는 경우이다. 물론 이때의 악인은 우스운 사람을 가리킨다. 골계는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종의 ‘추’에 해당한다. 칸트에 의하면 웃음은 긴장했던 기대가 돌연히 무(無)로 바뀌면서 생기는 정서로서, 기대되었던 것과 실현된 것 사이에서 양적 또는 질적 모순을 통해 성립되는 미의 상태이다.


6. ‘미’ 개념의 역사적 변천 과정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고,중세에서는 미 개념은 곧 ‘비례’로 이해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미가 객관적으로 대상에 귀속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미는 대상과 주관의 관계에 의해서 성립되는 관계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에는 미는 대상과 상관없이 주관에 중점을 둔 주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고,중세의 객관적 의미로서의 미(미론): 미가 객관적인 것으로서, 이것은 형식적 차원에서 볼 때 조화, 비례, 완전성, 다양의 통일 및 형식적 관계 등에 관계된 것이며, 예지적 차원에서 볼 때, 이념, 신, 보편적 자연, 절대정신에 관계된 것이다. 미의 본질을 이루는 내용이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와 같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일 경우, 그것은 대부분 경험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월적 실체가 전제되고 있다. 이러한 실체들은 그 본질이 정신적인 것들로서 예지적인 관조나 직관 및 상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형식미라는 말 속에는 예지적인 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른바 이상미(ideal beauty)가 바로 예지적 미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객관미의 경우에는 인간 주관의 감정이나 정서와 같은 요소는 개입되지 못한다. 이런 요소들은 미의 정의에 주된 요소가 아니라 부대적 요소에 불과하다. 이런 객관미는 미학이나 윤리학 모두에도 관계하는 존재의 질서 차원일 수도 있으며, 색체나 소리 및 정신적 산물에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미는 아주 좁게는 시각으로 파악되는 사물에 국한되기도 한다.

근대의 관계론적 의미의 미(취미론): 미가 객관이 지니고 있는 성질로 이해된 객관미를 근대에 이르러 비판을 받고 주관과 객관의 관계 속에서 미가 성립된다고 하는 입장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른바 미는 객관과 주관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취미론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이해는 애디슨(J. Addison, 1672-1719), 허치슨(F. Hutcheson, 1694-1746), 홈(H. Home, 1696-1782) 등 영국미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영국의 경험철학자 로크(J. Locke, 1632-1704)의 영향을 받아 미가 대상이 지니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 주관의 마음 상태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주장한다. 즉 어떤 아름다운 대상으로부터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지니는 감정과 관계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이들 취미론자들에 의하면 미의 즐거움은 ‘자기 이익이 동기가 되지 않은’ 무관심적 즐거움이다. 이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의 개념은 샤프츠베리(A.A.C. Shaftesbury, 1671-1713)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자기 이익이 동기가 되지 않은’ 관조적 성질을 말한다. 물론 이들 취미론자들도 객관미론자들처럼 미의 감정이 비례와 같은 형식적 성실에 의해 일으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이 더 이상 존재의 질서가 아니라, 그래서 ‘존재=미’가 아니라 미의 구성 요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들은 미를 대상적 차원이 아니라 주체의 능력 차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였으며, 바로 이런 맥락에서 ‘취미’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취미를 능력이 작용할 때의 심리상태가 무관심적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었다. 허치슨은 <<미와 덕의 관념의 기원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Beauty and Virtue, 1725>>에서 미를 지각하는 힘을 ‘내적 감각’(internal sense)이라고 하고, 이것에 의해서 미가 감각을 통해 관념으로 획득됨을 주장한다. 그는 이 내적 감각을 취미라고 하였으며, 이 감각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미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의 성질을 ‘다양의 통일’로 규정하였다. 조화나 비례를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취미론자 역시 전통적 미론을 계승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미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관념’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미론을 벗어나고 있다. 즉 전통적 미론이 미의 대상이 지니는 형식에 중점을 두었다면, 취미론자들은 미를 느끼는 주관의 감정에 중점을 두었다.

근대 이후의 주관적 의미의 미(미적 태도론): 미적 태도론이 본격화된 것은 대상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주관의 형식에서 찾는 칸트 이후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적 태도론자들은 취미론자들의 ‘무관심성’에 훨씬 더 중요한 비중을 두고 미적 대상을 마음의 조건으로부터 규정하고자 한다. 익히 알다시피 칸트에 의하면 취미는 미를 평가하는 능력이다. 취미판단은 무관심적인 즐거움에 관계하는 주관적인 형식에 근거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 따라서 개념을 넘어 어떤 종류의 대상을 지각할 때,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상상력과 지성이 ‘자유로운 유희’(freies Spiel)를 통해 만나게 되는 감정이 바로 미를 구성한다. 즉 상상력과 지성이 인식의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무관심적인 즐거움에 이르게 되며, 이런 즐거움을 일으키는 특수한 대상은 바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이 기반을 두고 있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유용성이나 완전성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하며, 합목적성이라는 것은 형식적 어울림이다. 취미론에서처럼 미적 태도론에서는 무관심성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취미론에서는 무관심적이라는 것이 취미의 능력이지만 태도론에서는 이것은 지각 자체를 의미한다. 태도론에서는 어떤 지각 방식이 대상이 지니고 있는 미적성격의 파악에 최소한 필요조건이 되며, 심지어 대상에 미적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관심성은 태도론에 이르러 보다 본격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미적 실재의 본질을 규정하거나 어떤 종류의 미적 실재에 대한 유일한 통로로서 역할을 한다. 이제 미적 태도론에 이르러서는 원래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지닌 객관적 의미를 수용할 수 없어, 이제는 이 말보다는 ‘미적 대상’이라는 말을 쓰고자 한다. 더 이상 비례와 미를 등치시키는 공식은 허용되지 않으며, 미학을 미라는 대상을 다루는 미에 관한 철학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도 거부한다.


7. 예술의 의미

한자 ‘예술’(藝術)이라는 단어의 ‘藝’는 고대에서 종자나 나무를 심는다는 ‘예’(執)로 사용되었으며, 당나라 때에는 심는다는 의미의 예(蓺)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주나라 시기에는 예(藝),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와 관련하여 육예(六藝)가 있었는데, 이것 역시 농부가 벼를 심듯이 심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예라는 글자는 손에 벼를 쥐고 땅에 심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예’라는 단어가 지닌 좀 더 구체적인 뜻을 파악해보면, 이 단어는 우선 첫째로,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기술’에 해당하는 것이며, 둘째로, 이 단어는 육예의 ‘예’처럼 농부가 수확을 얻기 위하여 오곡을 심듯이, 장차 사대부가 되려는 사람이 인간적 결실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교양의 종자를 심고 ‘인격도야’를 통해 꽃을 피워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술’(術)은 나라 안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길을 실행하는 방도로서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 ‘술’은 형이상학적 원리를 형이하학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에 해당한다.

이처럼 예술은 원래 기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실천을 위한 수단 방법의 의미도 있고, 덕이 있는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교육적 내지 윤리적 ‘효용성’의 의미도 있다. 따라서 고대 동양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의미하는 예술의 의미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육예에 포함되어 있었다. 육예에 바탕을 둔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나 기교뿐만 아니라 교양을 쌓고 인격을 도야함으로써 인간에게 유익한 예술의 ‘효용성’과 함께 인생에서 ‘즐거움’(樂)을 얻는 것이다. 나아가 이 예술은 우주와 인생의 이치인 道를 깨닫는 것에 관계한다. 그래서 공자에게도 예와 덕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서양에서도 예술에 해당하는 ars, art, Kunst는 모두 ‘기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 라틴어 아르스(ars)는 모두 기술, 방법, 길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또한 학문, 이론, 지식, 지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어 예술에 해당하는 Kunst는 ‘할 수 있다’(können)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생활에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정 재료를 가공하여 객관적 성과를 얻어내는 능력 및 활동으로서의 기술을 의미하였다. 테크네는 모방기술로서의 예술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마술, 의혹, 건축술, 요리술, 전술, 정치술, 처세술, 웅변술, 경작술 등을 포함하는 기술일반을 의미하였다.

사실 미를 규범이나 목표로 삼고 활동하는 ‘예술’(beaux-arts, fine arts)이라는 용어는 근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개념이다. 예술과 미의 결합, 예술이 곧 미의 추구라고 하는 등식은 근대적 사고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근대적 예술 개념이 등장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외적 요인으로는 (1)과학의 발달, (2)사회적 입장에서 개인주의의 대두(즉 개인의 개성적인 감정과 사상의 강조), (3)개인주의적 취미로 인한 전통법칙의 굴레로부터의 이탈, (4)철학적 입장에서 경험주의의 대두(감정과 상상력에 대한 긍정적 고려)를 들 수 있으며, 내적 요인으로는 (1)예술비평에서 새로운 비평용어(감정, 상상 등)의 등장, (2)회화에서 선과 색의 논쟁, (3)드라마에서 삼일치 법칙에 대한 반론 제기 등을 들 수 있다.2)

미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은 계몽주의 시대 바로(Ch. Batteux, 1713-1780)의 <<하나의 동일한 원리로 환원되는 예술>>(Traite des beaux-arts, reduits a un meme principe, 1746)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예술을 음악, 시, 회화, 조각, 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주장하며, 이들의 공통된 목적이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하고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바또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미를 대상으로 삼는 예술이 구체화되었다.

 

8. 예술 개념의 정의 문제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고대시대부터 부단히 정의를 내리려고 시도해왔다. 우선 첫째로, 예술은 미를 생산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예술과 미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 미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미는 한편에서는 즐거움을 주는 것 일반을 지칭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균형과 명확성, 형식적 조화를 지칭하였다.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일종의 감탄이나 찬양을 표시하는 것에 관계한다. 둘째로,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사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현실을 모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셋째로, 예술은 형식을 창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즉 예술은 사물의 형상화를 통해 사물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예술은 물질과 정신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주장은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 근대의 클라이브 벨, 로저 프라이 등에서 주장되었다. 넷째로, 예술은 표현하는 것이다. 즉 예술은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활동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런 이해는 근대 이후의 주관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다섯째로, 예술은 미적 경험을 산출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이 정의는 수용자에게 미치는 예술작품의 효과에 초점을 둔 것이다. 여섯째로, 예술은 충격을 주는 것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 역시 수용자에게 미치는 효과에 치중하지만, 다섯째와 달리 이 경우는 수용자들의 미적 경험보다는 그들에게 충격을 주는 데 더 주안점을 둔다. 소위 전위예술을 비롯하여 현대의 많은 화가와 작가 및 음악가들은 미적인 경험보다는 관객을 압도하고 당황시키며,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각인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들의 이런 경향은 예술을 충격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에 대해서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해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논리실증주의의 대두와 더불어 가치일반에 관계하는 분야들은 지식체계를 성립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학문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선포한 이후, 분석미학자들은 예술 역시 정의불가능한 것으로 선포하였다.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1889-1951)이 언어활용설(use theory)에 입각하여 언어가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는 본질주의적 관점을 거부하고, 그저 가족유사성만을 지님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해를 수용한 웨이츠(M. Weitz, 1916-)는 「미학에서 이론의 역할」(1956)이라는 논문에서 예술의 정의불가론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다양한 놀이들 사이에 일종의 유사성만 존재하지 동일한 규칙이 발견될 수 없듯이, 예술에도 다양한 장르들이 존재할 뿐이지, 동일한 규칙이나 기준이 있을 수 없다. 예술은 열린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질주의적 규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만델바움(M. Mandelbaum)은 「가족유사성과 예술에 관한 일반화」(1965)라는 글에서 전시적 특징과 비전시적 특징을 구분하고, 비록 놀이나 예술에서 전시적 특징의 차원에서는 서로 통일될 수 없는 다양성들이 존재하지만, 비전시적 차원에서 보면 공통의 특징이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나아가 딕키(G. Dickie)는 만델바움을 입장을 더 밀고 나가 예술을 제도적으로 정의하고자 하였다. 그는 예술작품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두 가지 의미를 분류적 차원과 평가적 차원으로 구분하고, 이 바탕 위에서 어떤 대상이 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인위성(artificiality)을, 충분조건으로서는 예술계(art world)의 역할을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전자는 비전시적 성질로서 대상에 작용하고 주어지는 성질이라면, 후자는 예술작품들이 몸담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기본 입장 아래서 “분류적 의미로서의 예술작품이란 (1)하나의 인공품으로서 (2)어떤 사회제도-예술계-의 편에 서서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에 감상할 수 있는 후보의 자격을 수여해 놓은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는 뒤썅(M. Duchamp, 1877-1968)이 변기를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미 제작된 기성품에 감상의 가능성을 설정한 것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1) (1) 마음에 끌려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흥미. (2) 아름다움이나 멋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 (3) 전문이나 본업은 아니나 재미로 좋아하는 일.


2) 고대인들에게는 아트를 자유학예(liberal arts)와 비속한 기술(vulgar arts)로 분류했으며, 중세인들은 이런 고대의 예술개념을 계승하면서, ‘비속한 기술’이라는 말 대신에 기예(技藝, mechanical art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자유학예에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의 7과목이 포함되었으며, 기예는 실용성에 근거하여 식량제조술, 직조술, 건출술, 운송술, 의술, 교역술, 전투술의 7개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