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저는 조리개와 셔터의 한 스톱씩을 서로 엇바꾸어 조절함으로써 적정노출을 얻을 수 있다고 예를 들어 말씀 드렸습니다. 즉 어떤 노출이 만약 셔터속도 1/125초에서 f/8이 적당한 세팅이라고 할 경우, 1/60초에 f/11로 교정하여도 동일한 노출을 얻을 수 있고, 또 1/500초에 f4로 교정하여도 역시 동일한 노출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 세 가지 경우는 도대체 뭐가 서로 다른 경우일까요? 이 세 가지 경우에 찍은 사진을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그냥 사진이 밝기도 서로 비슷하고 적정 노출로 잘 나왔다고 느낄 것입니다. 특별히 광각으로 찍은 평면적인 정물 사진의 경우라면 아주 민감한 사진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야말로 그 세 사진들의 차이점을 알아내기란 거의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경우가 피사체가 움직이고 있는 경우라거나 망원렌즈와 같이 초점거리가 긴 것일 경우에는 심지어 초보자까지도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그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위의 예에서 만약 피사체가 달리는 사람이었고, 표준렌즈인 50mm 정도의 렌즈로 찍었다면,

*1/60초에 f/11 로 세팅하여 찍었다면 그 사람은 아주 많이 흔들려서 누구인지를 알아보기가 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달리는 사람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잘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1/125초에서 f/8로 세팅하여 찍었다면 팔 다리 등 부분적으로 약간 흔들린 감은 있으나 누군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사진이 나왔을 것입니다. 일부러 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이러한 세팅으로 찍을 수도 있겠지요.

*1/500초에 f4로 세팅하고 찍었다면 원래 흔들리는 피사체였다는 것을 거의 느낄 수 없이 아마도 완전히 딱딱하게 정지된 모습으로 찍힐 것입니다. 그러니 예를 들어 물방울 접사와 같이 움직이는 피사체의 한 순간의 모습을 정밀하게 나타내려면 이렇게 세팅하고 찍어야 하겠지요?

이와 같이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을 때, 그 다이내믹한 역동성의 변화를 사진의 효과로 남기기 위해서는 포토그래퍼의 작품 의도에 따라서 셔터속도를 고정해 놓고 조리개로써 노출을 맞추는 방식인 TV 방식(셔터 우선모드)을 주로 사용합니다.


자, 그리고 만약 이 경우 100mm 정도 되는 망원렌즈로 인물사진을 찍는데 모델의 앞뒤로 수풀 등이 있는 것을 찍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1/60초에 f/11로 세팅하고 찍었다고 한다면, 모델은 물론 매우 선명하게 초점이 맞았을 것이지만, 그 앞뒤로 나 있는 수풀들도 초점이 거의 맞아서 상당히 자세한 디테일로 찍히게 되어 인물이 특별히 두드러지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통 자동카메라로 찍었을 때 보게 되는 입체적인 원근감이 없는 밋밋한 사진과 같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 경우 모델이 움직이게 되면 자칫 흔들린 사진을 얻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세팅은 인물사진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다만 주변 환경이 모델과 잘 어울리고 너무도 아름다워서 모델의 인물을 잘 살려줄 수 있을 경우나, 소형 디카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이 팬 포커싱이라서 원근감을 살릴 수 없는 경우라면 사용해 볼 수 있는 세팅이라고 하겠습니다.

*1/125초에서 f/8로 세팅하고서 찍었다면, 모델은 당연히 초점이 잘 맞아서 선명할 것이고, 망원렌즈의 성질상 주변의 수풀도 적당히 아웃 포커싱이 되어서 적어도 어디에서 찍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만큼의 디테일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건물이나 조형물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때 나 여기 이런 곳에 갔다 왔다고 주변 환경에 대한 암시를 은근히 남기면서도 인물을 부각시키려면 이러한 세팅도 좋을 것입니다.

*1/500초에 f4로 세팅하고서 찍었다면 모델만 초점이 쨍하게 맞고 전후의 수풀은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웃 포커싱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모델이 좀 움직였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주변 환경이 좀 어수선 하고 아름답지 않은 경우, 그리고 모델과의 조화가 잘 안될 경우 등 주변 환경을 모두 아웃 포커싱으로 날려 버리고 모델만을 강조하여 찍을 때에는 이러한 세팅이 가장 좋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통 인물사진은 이러한 세팅으로 많이 찍지요.

이와 같이 앞 뒤에 전경이나 배경을 가진 고정된 피사체를 찍을 때, 그 주변의 모습을 원하는 만큼의 선명도로써 집어넣어서 사진의 효과로 남기기 위해서는 조리개를 포토그래퍼의 작품 의도에 따라 고정해 놓고, 셔터속도로써 노출을 맞추는 방식인 AV 방식(조리개 우선모드)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조리개와 셔터 속도의 여러 가지 세팅으로 동일한 노출 하에서 전혀 다른 효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을 이용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사진작가의 의도대로 여러 가지 세팅과 촬영기법을 도입하여 목적에 알맞은 사진을 찍게 되는데, 여기에 바로 수동기능을 갖춘 고급 카메라로 사진 찍는 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수동기능이 없는 값싼 똑딱이 카메라로서는 거의 흉내 낼 수 없는 기능들이지요. 그래서 자꾸 더 좋은 장비에 뽐뿌질을 당하는 것일지도....^^

그러나 사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장비도 좋아야겠지만 소위 말하는 내공이 증진되어야 하는 법인데, 특별히 SLR 유저들의 경우 내공을 증진시키려면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개념을 잡고서 연습을 하면서 감을 잡아야 더욱 빨리 그 실력이 증진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묘한 효과 변화의 비밀은 바로 조리개구경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피사계 심도’라는 요소의 변화에 있습니다. 이 ‘피사계 심도’라는 말은 화면의 앞뒤로 얼마만큼이 초점이 맞는가를 의미하는데, 결국 조리개의 직경의 크기는 이 피사계 심도를 좌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메라의 렌즈에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정확하게 필름 면과 평행이 되는 어떤 단 한 면만 초점이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초점이 정확히 맞는 부분의 앞뒤로도 실제로 초점이 맞는 부분과 거의 차이가 없이 충분히 선명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피사계심도’라고 말합니다.
이 피사계 심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3가지 주요 요인은 '조리개, 렌즈의 초점거리, 그리고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거리'입니다.

1) 조리개와 피사계 심도와의 관계
피사계 심도는 조리개를 조일수록 더 늘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조리개를 조여 주면 조여 줄수록 심도가 깊어져서 앞뒤로 초점이 맞는 부위가 늘어나므로 전 화면이 쨍한 사진이 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풍경사진은 보통 조리개를 8이나 11이상으로 조이고들 찍습니다.

2) 렌즈의 초점거리와 피사계 심도와의 관계
렌즈의 초점거리가 길어질수록 표현할 수 있는 피사계 심도는 얕아집니다. 그러므로 초점거리가 짧은 광각렌즈는 바로 앞에서부터 무한대까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풍경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망원렌즈에서는 초점이 맞는 면에서 앞뒤로 겨우 면 센티미터 정도만 제한적으로 이 피사계 심도가 맞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물사진은 보통 인물만 부각시키고 주변의 배경은 날려버려서 주제만을 깨끗하게 부각시킨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 망원렌즈를 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3)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거리와 피사계 심도와의 관계
피사체가 카메라와 근접해 있을수록 표현할 수 있는 피사계 심도는 적어집니다. 조리개의 조절과 렌즈의 초점거리, 그리고 카메라와 피사체 간의 거리를 조절하여 화면에서 선명하게 보일 피사체의 정도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피사계 심도의 조절은 SLR 카메라의 주요한 장점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수선한 배경과 산만한 전경 부분을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초점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데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조절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똑같이 흐리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초점 구역으로부터 피사체가 멀리 떨어질수록 흐림의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by 마루7 2009. 3. 11. 20:01